약을 먹으면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예전처럼 활기차고 개운한 느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담당 선생님과 상의해서 약을 조금 줄여볼까 시도하면, 이전보다 훨씬 더 심한 불안감이나 불면이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다시 원래 용량으로 돌아가거나, 심지어는 약을 더 늘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나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30년 가까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환자분들을 만나오면서, 저 역시 이 질문 앞에서 오랫동안 고민해왔습니다.
오늘은 왜 정신과 약이 한번 먹기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지, 그 이유가 여러분의 의지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어 약물에서 벗어나 뇌와 몸의 건강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인지, 기능의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명확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왜 우울증 약을 끊기 어려울까??
제가 오늘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약을 끊지 못하는 것이 결코 여러분의 의지가 약해서도,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리적 반응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이미 약에 적응되었기 때문
이를 '신체적 의존성'이라고 하는데, 중독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중독은 약에 대한 강박적인 갈망이나 행동을 동반하지만, 신체적 의존은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우리 뇌는 굉장히 똑똑해서, 외부에서 약물이 계속 들어오는 환경에 스스로를 맞추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항우울제가 뇌 안의 세로토닌 농도를 인위적으로 높여주면, 뇌는 '세로토닌이 너무 많네'라고 인식하고 스스로 세로토닌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의 민감도를 낮추거나 그 숫자를 줄이게 됩니다. 약이 있는 상태를 새로운 정상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뇌의 시스템 자체가 약이 매일 공급된다는 것을 전제로 재조정된 셈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약 공급이 줄거나 끊기면 어떻게 될까요? 뇌는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스스로 균형을 맞추는 능력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어지럼, 메스꺼움, 극심한 불안감, 머리가 찌릿한 느낌, 이런 것들이 바로 금단 증상입니다. 뇌가 원래의 균형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호입니다.

2. 자율신경계의 불균형
우리 몸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라는 두 가지 자율신경 시스템이 있습니다. 교감신경은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 몸을 긴장시키고 활동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부교감신경은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키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불안, 우울, 불면을 오래 겪으신 분들은 대부분 교감신경이 너무 예민해져 있습니다. 작은 스트레스에도 교감신경이 너무 쉽게, 그리고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이를 '교감신경 과활성 상태'라고 합니다.
심장이 이유 없이 두근거리거나, 숨이 차고, 어깨 근육이 항상 뭉쳐 있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증상들. 이것이 바로 교감신경이 계속 활성화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우리 몸의 반응입니다. 약은 이런 증상을 일시적으로 눌러줄 수는 있지만,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교감신경 자체를 안정시켜주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건 ‘왜 균형이 깨졌는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애초에 왜 우리 뇌와 자율신경계의 균형은 깨진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바로 기능의학의 시작입니다.
기능의학은 증상을 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증상을 유발한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데 집중합니다. 기능의학적 관점으로 볼 때, 뇌와 자율신경계 불균형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check 1. 영양의 문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기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은 뇌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반드시 비타민 B군이나 마그네슘, 아연과 같은 재료가 있어야만 합니다.
만약 식생활이 불규칙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이런 필수 영양소들이 고갈된 상태라면, 우리 뇌는 행복 호르몬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집을 짓고 싶은데 벽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설계도가 있어도 재료가 없으면 집은 지어지지 않습니다.
check 2. 호르몬의 문제
우리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면 우리 몸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비정상적으로 분비하게 됩니다. 코르티솔은 원래 위기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호르몬이지만, 이것이 지속적으로 높거나 리듬이 망가지면 문제가 됩니다.
코르티솔의 불균형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리고,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뇌 기능을 직접적으로 저하시킵니다. 아침에 못 일어나고, 낮엔 무기력하고, 밤엔 오히려 각성되어 잠이 안 오는 패턴. 많은 분들이 경험하시는 이 증상이 바로 코르티솔 리듬이 망가졌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check 3. 장-뇌 축의 문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장과 뇌의 연결, 즉 '장-뇌 축' 문제입니다. 흔히 장은 제2의 뇌라고 불리는데,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장과 뇌가 직접적으로 연결된 복잡한 신경 시스템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기분과 안정감을 조절하는 핵심 물질인 세로토닌의 90% 이상이 뇌가 아닌 장에서 만들어집니다. 건강한 장내 환경이 안정적인 기분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보여주는 사실입니다.
만약 장내 유해균이 많아지고 환경이 나빠져서, 장의 보호막인 점막이 손상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 손상된 틈으로 원래는 혈관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 독소나 미생물의 찌꺼기 같은 염증 유발 물질들이 그대로 유입하게 됩니다.
이렇게 혈관으로 들어온 염증 물질들은 온몸을 순환하다가 결국 뇌의 방어 시스템인 혈관뇌장벽까지 뚫고 들어가 신경염증을 일으키게 됩니다. 뇌세포 기능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는 것입니다.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하고 집중이 안 되는 브레인포그 현상이나, 아무리 약을 써도 나아지지 않는 불안감, 우울감이 장에서 시작된 신경염증 때문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회복의 시작, ‘뇌와 몸’ 컨디션 점검
정리하자면, 약을 끊기 어려운 것은 뇌가 약에 적응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 즉 영양, 호르몬, 장 건강의 불균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회복을 위한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일까요? 바로 나의 뇌와 몸의 현재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싸우기는 힘듭니다. 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추측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데이터로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먼저 ‘뇌’ 상태 시각화
정량뇌파검사는 뇌의 전기적인 활동을 분석하는 검사입니다. 이 검사를 통해 뇌의 어떤 부분이 정상보다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지, 혹은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지를 색깔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안이나 걱정이 많은 분들은 생각과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 부위에서 빠른 뇌파인 베타파가 과도하게 나타나는 패턴을 보입니다. 반대로 무기력하고 우울한 분들은 긍정적인 감정과 관련된 좌측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된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몸’ 상태 측정
자율신경검사는 심장 박동의 미세한 변화를 분석해서 우리 몸의 스트레스 상태와 회복력을 측정하는 검사입니다. 이 검사를 통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중 어느 쪽의 활동이 더 강한지, 내 몸이 얼마나 긴장 상태에 있는지를 정확한 숫자로 알 수 있습니다.
"항상 불안하고 머리가 복잡해요"라는 막연한 호소가, "정량뇌파검사상 우측 전두엽에 과도한 베타파가 보이고, 자율신경검사상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라는 객관적인 데이터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약물의 대안, ‘TMS 치료’
이렇게 뇌 기능의 불균형 상태를 파악했다면, 그 다음은 뭘 해야 할까요? 약물 없이 과열된 뇌는 식히고, 저하된 뇌 기능은 깨우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TMS 치료입니다.

TMS는 경두개자기자극술(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의 약자로, 자기장을 이용해 뇌의 특정 부위를 활성화하고 뇌 회로의 재조정을 도와주는 치료법입니다. 미국 FDA와 국내 식약처에서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승인된 치료로, 비침습적이며 약물보다 부작용이 적은 것이 특징입니다.
정량뇌파 분석을 기반으로 정확한 자극 부위와 강도를 설정하면, 환자 개개인에 최적화된 맞춤형 치료가 가능합니다. 과도하게 활성화된 뇌 영역은 진정시키고, 기능이 저하된 영역은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정신과 전공의 시절부터 정량뇌파 연구를 시작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TMS 치료로 이어졌습니다. 지금까지 5만 건 이상의 시술 데이터를 축적하며, 약물의 한계를 보완하는 비약물 치료의 가능성을 직접 확인해왔습니다.
우울증, 진짜 회복의 의미
정신과 환자분들을 오랫동안 진료해오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약물의 부작용'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증상 때문에 약이 필요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약이 점점 늘어나고, 무기력, 졸림, 체중 증가, 자신감 저하가 이어지고, 결국 사회로부터 고립되는 분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습니다.
급성기에는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약을 최소화하고, 스스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회복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우울증 약을 끊기 어려운 것은 단순히 뇌가 약에 적응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의 균형, 즉 영양 상태, 호르몬 리듬, 장 건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함께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기능의학적 검사를 통해 내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 그것이 약물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되찾는 첫걸음입니다. 여러분의 고통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찾으면, 해결의 길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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