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마티스관절염으로 3년째 약을 먹고 있는 40대 여성이 있습니다. 관절 통증은 약으로 어느 정도 조절되지만, 약을 줄이면 다시 부어오르고, 최근에는 갑상선 수치까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진료실에서 묻습니다.
"선생님, 왜 제 몸이 저를 공격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해주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면역억제제는 면역의 '출력'을 낮추는 데 집중합니다. 스테로이드는 염증의 불길을 빠르게 잡아줍니다. 약물들은 분명 효과적이고, 급성기에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이 질문에는 답하지 못합니다. 애초에 면역 시스템이 왜 오작동하게 되었는가.
기능의학의 자가면역질환 접근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
자가면역질환은 면역 시스템이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질환군을 말합니다. 류마티스관절염, 하시모토 갑상선염, 루푸스, 건선, 1형 당뇨, 다발성경화증 등 현재까지 80종 이상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질환들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2023년 의학 저널 《The Lancet》에 발표된 영국의 대규모 연구는 주목할 만합니다. 2,200만 명의 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이 코호트 연구에서, 자가면역질환은 약 10명 중 1명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시간이 갈수록 유병률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4년 《Autoimmunity Reviews》에 게재된 글로벌 추세 분석 연구 역시 1990년부터 2021년까지 자가면역질환 발생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이 추세가 2050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에서도 자가면역 반응의 지표인 항핵항체(ANA) 양성률이 과거에 비해 뚜렷하게 높아졌다는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유전자는 수십 년 만에 변하지 않습니다. 유전자 구조는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서서히 바뀌는 것이지, 한두 세대 만에 급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가면역질환이 이토록 빠르게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변한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방식입니다. 가공식품 중심의 식단, 환경독소 노출, 만성적 스트레스, 수면 패턴의 변화, 항생제 남용으로 인한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교란. 이런 환경적 변화가 면역 시스템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기능의학이 자가면역질환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에 있죠.
자가면역질환이 시작되는 3가지 조건
그렇다면 자가면역질환은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요? 최근 수십 년간의 연구를 종합하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조건 : 유전적 소인
자가면역질환에는 유전적 취약성이 관여합니다. 특히 HLA(인간백혈구항원)라는 유전자군의 특정 변이가 면역 시스템의 자기 인식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참고) 자가면역질환이 가족 내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부모가 류마티스관절염이라고 해서 자녀도 반드시 같은 질환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신 하시모토 갑상선염이나 루푸스처럼 '다른 종류의' 자가면역질환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참고) 특정 질환이 아니라, 면역 시스템의 취약성 자체가 유전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유전은 전체 발병 원인의 약 10~40%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60~90%는 환경적 요인이 차지합니다. 쉽게 비유하자면, 유전은 총에 탄을 장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여전히 ‘환경’이라는 얘기죠.
2. 두 번째 조건 : 장 투과성 증가 (무너진 첫 번째 방어선)
우리 장의 안쪽 벽은 단 한 겹의 세포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얇은 막이 외부 세계와 우리 몸의 내부를 구분하는 최전선 방어벽입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장 세포들은 '밀착연접(tight junction)'이라는 단단한 연결 구조로 서로 붙어 있어서, 아주 작은 영양소만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차단합니다.
문제는 이 밀착연접이 손상될 때 발생합니다. 연접이 느슨해지면, 정상적으로는 통과하지 못했을 물질들(미처 다 분해되지 않은 음식 단백질,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내독소), 각종 항원)이 장벽을 넘어 혈류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장 투과성 증가', 흔히 '장누수(leaky gut)'라고 불리는 상태입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물질이 있습니다. '조눌린(zonulin)'이라는 단백질입니다. 조눌린은 밀착연접을 분해하는 신호를 보내는 일종의 열쇠 역할을 합니다. 흥미롭게도, 밀가루의 글루텐 성분이 장 세포의 특정 수용체에 결합하여 조눌린 분비를 촉진한다는 기전이 확인되었습니다. 글루텐이 자가면역질환, 특히 셀리악병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장벽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혈류로 들어온 '침입자'들을 면역 시스템이 감지하고 대응하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면역 세포가 과활성화되면서, 침입자뿐 아니라 자기 조직까지 공격하는 교차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Frontiers in Immunology》를 비롯한 다수의 면역학 저널에서 장 투과성 증가가 자가면역질환의 선행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장내 미생물의 불균형(디스바이오시스)이 장벽 손상을 가속화하고, 이것이 전신적인 면역 반응을 촉발한다는 경로도 점점 더 명확해지는 추세죠.

3. 세 번째 조건 : 환경적 방아쇠
유전적 소인이 있고, 장벽이 약해진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면역 오작동에 불을 붙이는 '방아쇠'입니다. 연구를 통해 확인된 주요 방아쇠는 크게 4가지로 분류됩니다.
3-1. 분자 모방(Molecular Mimicry)
: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나 세균의 단백질 구조가 우리 몸의 특정 조직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경우가 있습니다. 면역 시스템이 이 외부 침입자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구조가 비슷한 자기 조직까지 함께 공격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연쇄상구균 감염 후 발생하는 류마티스 열입니다. 세균의 M단백질과 심장 근육 단백질(미오신)의 구조적 유사성 때문에 면역 세포가 심장 판막을 공격하게 됩니다. 하시모토 갑상선염에서 글루텐 단백질과 갑상선 조직 사이의 분자 모방 역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주제입니다.
3-2. 만성 감염
: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는 성인의 대다수가 보유하고 있지만, 특정 조건에서 재활성화되면 면역 교란의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와 같은 만성 세균 감염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3-3. 만성 스트레스와 호르몬 교란
: 스트레스는 단순한 심리 문제가 아닙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 축(HPA축)이라 불리는 호르몬 조절 시스템을 교란합니다.
정상적이라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면역 반응을 적절히 조절해주어야 하지만,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코르티솔에 대한 수용체 저항성이 생겨 코르티솔이 분비되더라도 염증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가면역질환 연구에서 환자의 상당수가 질환 발병 전 비정상적으로 높은 스트레스를 경험했다고 보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4. 환경독소
: 수은, 납 같은 중금속, 대기오염 물질, 일부 화학물질은 면역 세포의 신호 전달을 교란하고, 장벽 손상을 가속화합니다.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독소의 종류와 양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는 점도 자가면역질환 증가의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왜 약으로만 해결되지 않는가?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이렇게 복합적인데, 왜 치료는 면역억제제에 집중되어 있을까요?
이건 현대의학의 한계라기보다, 접근 방식의 구조적 차이에 가깝습니다.

현대의학에서 자가면역질환의 표준 치료는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 생물학적 제제(DMARDs 등)를 통해 면역 반응의 강도를 낮추는 것입니다. 이 약물들은 급성 악화(플레어) 시 염증을 빠르게 잡아주고, 조직 손상의 진행을 늦추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중증 자가면역질환에서 이런 약물 치료는 반드시 필요하며,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이 접근은 면역이 '왜' 과활성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장 환경이 어떤 상태인지, 호르몬 리듬이 정상인지, 독소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런 '면역 오작동의 조건'은 치료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사실이 있습니다. 자가면역질환 환자 중 상당수가 하나의 자가면역질환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자가면역질환이 함께 발생하는 '공동발생' 현상을 보입니다. 이런 현상은 문제가 특정 장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면역 시스템 자체의 균형이 깨져 있다는 것을 방증하죠.
약물 치료가 '불을 끄는 것'이라면, 기능의학은 '불이 나는 조건을 제거'합니다. 둘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는 상호 보완적인 접근입니다.
원인을 알면, 방향이 바뀝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려면 ‘유전적 소인, 장 투과성 증가, 환경적 방아쇠’라는 3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유전은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 건강, 호르몬 균형, 독소 부담, 스트레스 반응은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원인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면역이 오작동하는 고리를 끊을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죠.
이어지는 2부에서는 기능의학이 이 원인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면역의 균형을 회복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접근하는지를 다루겠습니다. 면역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방식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부(준비 중) 이어서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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