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떠도 개운하지 않고, 주말 내내 쉬어도 월요일이면 다시 지쳐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병원에 가면 혈액검사 결과는 '정상'이라고 하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요?
이렇게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더 답답해지는 기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예민한 건가?', '그냥 참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셨다면, 오늘 이 글이 작은 실마리가 되어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피로와 만성피로는 다릅니다. 그리고 만성피로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그 이유가 일반적인 검사로는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만성피로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피로'는 사실 여러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이 구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 피로는 야근을 하거나 운동을 많이 한 후 느끼는 피로입니다. 하루 이틀 푹 쉬면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우리 몸의 정상적인 반응이지요. 만성피로는 조금 다릅니다.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피로로, 휴식을 취해도 회복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하고, 뚜렷한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만성피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입니다. 의학적으로 정해진 기준을 충족해야 진단되는 질환으로, 단순히 '오래 피곤한 것'과는 구별됩니다.
미국 국립의학원에서 발표한 진단 기준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받으려면 다음 3가지 핵심 증상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1. 이전에 할 수 있었던 일상 활동 능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예전에는 거뜬히 해내던 업무나 집안일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2. 또 활동 후 증상이 악화됩니다. 이것을 '활동 후 탈진'이라고 부르는데, 조금만 무리해도 다음 날 혹은 며칠간 심하게 지치는 현상입니다.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것처럼요.
3. 마지막으로 잠을 자도 상쾌하지 않습니다. 8시간을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피곤하고, 몸이 무겁습니다.
이 3가지 외에도 집중력 저하나 기립성 어지럼증 같은 증상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잠깐, 스스로 점검해 보세요. 위의 세 가지 중 해당되는 게 있으신가요? 만약 6개월 이상 이런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면, 단순한 피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만성피로의 원인
"원인을 모르겠다"는 말처럼 답답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능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만성피로에는 분명한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미토콘드리아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미토콘드리아는 우리 몸 세포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작은 발전소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음식으로 섭취한 영양소를 에너지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이 발전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생깁니다. 마치 발전소 효율이 떨어지면 전기 공급이 불안정해지는 것처럼,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되면 우리 몸은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아무리 밥을 먹고 쉬어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왜 지치게 될까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만성적인 영양 불균형, 체내에 축적된 독소와 중금속, 지속적인 염증 반응, 그리고 산화 스트레스가 미토콘드리아를 손상시킵니다. 특히 현대인의 식습관과 환경은 미토콘드리아에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가 일관되게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가 만성피로증후군 증상의 직접적인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두 번째, HPA 축 이상
HPA 축이라는 용어도 처음 들으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우리 몸의 스트레스 관리 시스템입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시스템이 작동해서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고, 몸이 스트레스에 대응할 수 있게 해줍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너무 오래, 너무 자주 작동할 때 생깁니다. 현대인의 삶을 생각해 보세요. 업무 스트레스, 대인관계 스트레스, 경제적 걱정, 수면 부족. 우리 몸은 끊임없이 스트레스 모드에 놓여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 엔진을 끄지 않고 계속 공회전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엔진이 과열되거나 연료가 바닥나게 됩니다. HPA 축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과부하 끝에 시스템 자체가 지쳐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코르티솔 분비 패턴이 불규칙해집니다. 아침에 높아야 할 코르티솔이 낮고, 저녁에 낮아야 할 코르티솔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다수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 대다수에서 이런 HPA 축 기능 이상이 발견됩니다. 스트레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시스템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셈입니다.
세 번째, 장-뇌 축 문제와 장누수
"피로가 장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장 건강과 만성피로 사이에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장에는 약 39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이 미생물들은 단순히 소화를 돕는 것을 넘어서, 면역 시스템을 조절하고, 뇌와 소통하며, 전신의 염증 반응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을 장-뇌 축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고, 장 점막이 손상될 때 발생합니다. 장 점막은 원래 촘촘한 그물망처럼 외부 물질이 혈액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줍니다. 하지만 이 장벽이 느슨해지면, 장내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가 혈액으로 스며들어갑니다.
혈액 속으로 들어간 독소는 우리 몸에 지속적인 염증 반응을 일으킵니다. 이 염증은 뇌에도 영향을 미쳐서 브레인포그, 집중력 저하, 그리고 만성적인 피로감을 유발합니다.
2024년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에서는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건강한 사람과 현저히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장 건강에 도움을 주는 유익균이 부족하고, 장벽을 손상시킬 수 있는 세균이 많았습니다.

일반 검사에서는 정상.. 그런데 왜 피곤할까?
진료실에서 이 질문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녀봤고, 혈액검사도 했고, 심지어 정밀 건강검진까지 받았는데 결과는 항상 '이상 없음'. 분명히 몸은 힘든데 말이죠.
여기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건강검진과 혈액검사는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간 수치가 기준치를 넘었는지, 혈당이 당뇨 범위에 들어갔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죠. 이런 검사들은 이미 질병이 발생한 후에야 이상 소견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만성피로는 대부분 질병이 발생하기 전 단계, 즉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나타납니다. 간 수치는 정상이지만 간의 해독 기능이 떨어져 있을 수 있고, 혈당은 정상이지만 세포가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낮을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의 저하'는 일반 검사로는 포착되지 않습니다.
기능의학 검사는 이 지점을 봅니다. 단순히 수치의 정상과 비정상을 넘어서, 우리 몸이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독소를 얼마나 잘 배출하고 있는지, 스트레스에 얼마나 적절히 반응하고 있는지를 평가합니다.
예를 들어, 소변 유기산 검사는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사 산물을 분석합니다. 이를 통해 세포 수준에서 에너지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액 코르티솔 검사는 하루 동안의 코르티솔 분비 패턴을 보여줍니다. 아침, 점심, 저녁, 취침 전 네 번에 걸쳐 측정하면 HPA 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지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율신경 검사는 심박 변이도를 측정해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을 평가합니다. 만성피로 환자들에게서는 대체로 이 균형이 깨져 있는 것이 관찰됩니다.
하이맵의원에서는 이런 검사들을 종합해서 분석합니다. 소화와 흡수, 호르몬, 염증과 독소, 뇌 기능, 대사 기능 등 일곱 가지 핵심 시스템과 뇌의 세 가지 균형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피로의 진짜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만성피로,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좀 피곤한 거 아닌가요? 참고 살면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데요. 만성피로를 단순히 '컨디션 난조'로 여기고 방치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먼저, 일상생활의 질이 크게 떨어집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실업률은 일반인보다 현저히 높습니다. 업무 집중이 어렵고, 체력적으로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죠.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만나자는 약속을 자꾸 미루게 되고, 가족과의 시간도 줄어듭니다.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줍니다. 만성피로가 오래 지속되면 우울감이나 불안감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면역 기능도 떨어집니다. 만성피로 상태에서는 감기에 자주 걸리고, 한번 아프면 회복이 더딥니다. 염증이 만성화되면서 다른 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높아집니다.
만성피로는 단순히 '좀 피곤한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 몸 전체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작은 균열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인을 찾아야 회복이 시작됩니다.
어느 날 하이맵의원 진료실에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30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는데, 몇 년째 이어지는 피로와 브레인포그로 힘들어하고 계셨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녀봤지만 항상 같은 말만 들었다고 합니다. "검사상 이상 없음."
기능의학 검사를 진행했습니다. 결과를 보니 미토콘드리아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는 영양소들이 부족했고, 타액 코르티솔 패턴은 전형적인 HPA 축 피로 양상을 보였습니다. 장내 미생물 검사에서는 유익균 비율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원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에 따라 개선, 치료 방향을 잡았죠.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지원하는 영양 요법, HPA 축 안정화를 위한 생활 습관 교정, 장 건강 회복을 위한 식이 조절.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접근했습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분명하게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피로의 원인이 하나가 아니듯, 회복의 열쇠도 여러 곳에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열쇠들을 찾아내는 것이겠죠.
만성피로로 힘든 분들에게,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면서 "이게 나 이야기 같다"고 느끼셨나요?
만성피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이해받기도 어렵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도 "내가 나약한 건가?"라고 자책하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당신의 피로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고. 그리고 그 이유를 찾으면 회복의 길도 열립니다. 검사상 정상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진짜 원인, 그 근원을 함께 찾아 회복으로 리드하는 것이 바로 기능의학이 하는 일입니다. 더 이상 혼자 견디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려움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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