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건강에 좋은 음식,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하이맵의원이 단순히 ‘좋다’는 의미를 넘어선 조금은 다른 식습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완벽한 식단'이 아니라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 복잡한 영양학 이론이나 유행하는 다이어트법 대신, 우리 장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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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0, 2025
장 건강에 좋은 음식,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건강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어제는 좋다던 음식이 오늘은 나쁘다고 하고, 누군가에게 효과 있던 식단이 나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주기도 하죠. 혼란스러운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하이맵의원이 단순히 ‘좋다’는 의미를 넘어선 조금은 다른 식습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완벽한 식단'이 아니라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
 
복잡한 영양학 이론이나 유행하는 다이어트법 대신, 우리 장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식이섬유라는 선물

 
우리 장 속에는 무려 약 39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이 미생물들도 먹어야 살 수 있는데요,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식이섬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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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섬유는 우리 몸에서 소화되지 않고 대장까지 내려갑니다. 여기서 장내 세균들이 식이섬유를 발효시키면서 '단쇄지방산'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이름이 좀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는데, 쉽게 말해 장 건강을 지키는 보호막 같은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단쇄지방산 중에서도 '부티레이트'라는 성분이 특히 중요합니다. 부티레이트는 장 점막 세포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고, 장벽을 튼튼하게 만들어 유해 물질이 혈액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또한 몸 전체의 염증을 줄이고 면역 기능을 조절하는 데도 관여합니다.
 
2020년 《Frontiers in Endocrinology》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이 단쇄지방산은 장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 건강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장과 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장-뇌 축' 이론의 핵심 매개체 중 하나가 바로 이 물질인 것이죠.
 
그렇다면 식이섬유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통곡물이 좋은 출발점입니다. 백미 대신 현미나 잡곡을 섞어 먹는 것만으로도 식이섬유 섭취량을 크게 늘릴 수 있습니다. 콩류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두부, 된장, 청국장처럼 우리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콩 음식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물론 채소와 과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천 방법은 단순하게 시작하세요. "하루 한 끼는 현미밥이나 잡곡밥으로, 매 끼니마다 채소 반찬 한 가지 이상." 이 정도면 충분한 출발점입니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장 건강으로 가는 길입니다.
 

2. 살아있는 균, 발효식품

 
식이섬유가 장내 유익균의 '먹이'라면, 발효식품은 유익균 그 자체를 우리 몸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발효식품에는 유산균을 비롯한 다양한 미생물이 살아 있습니다. 이 미생물들이 장에 도달하면 기존에 살고 있던 장내 세균들과 어우러지면서 전체적인 미생물 생태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마치 숲에 다양한 나무와 풀이 자랄수록 생태계가 건강해지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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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스탠퍼드 의과대학에서 진행한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 36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10주 동안 한 그룹에는 발효식품을, 다른 그룹에는 고섬유질 식단을 제공했습니다.
 
결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발효식품 그룹에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눈에 띄게 증가했고, 몸 전체의 염증 지표는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연구를 이끈 저스틴 소넨버그 교수는 이 결과를 "놀라운 발견"(This is a stunning finding)이라고 표현했죠.
 
2024년 《Cell Metabolism》에 실린 연구에서도 발효식품이 장벽을 강화하고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발효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대사산물이 우리 몸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이미 발효식품의 강국에 살고 있습니다. 김치, 된장, 청국장, 간장, 젓갈... 우리 식탁에는 이미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발효식품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굳이 외국의 낯선 음식을 찾을 필요 없이, 우리 전통 음식을 조금 더 의식적으로 챙겨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물론 요거트나 케피어, 콤부차 같은 음식도 좋은 선택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특정 발효식품이냐가 아니라, 발효식품을 '꾸준히' 먹는 습관입니다.
 
생활 속 실천 방법은 "매일 발효식품 한 가지 이상 먹기." 아침에 요거트 한 컵, 점심에 김치 한 접시, 저녁에 된장찌개 한 그릇 정도 충분합니다. 이미 우리가 하고 있는 식습관에서 조금만 더 의식을 기울이면 되죠.
 
단, 시중에 판매되는 일부 발효식품은 살균 처리되어 살아있는 균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가능하면 전통 방식으로 만든 제품이나 '생균' 표시가 있는 제품을 선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3. 초가공식품이라는 함정

 
지금까지 장에 좋은 것을 '더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빼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장이 싫어하는 음식을 계속 먹는다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공장에서 여러 단계의 가공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식품을 말합니다. 과자, 라면, 탄산음료, 냉동 피자, 즉석식품, 가공 소시지... 편리하고 맛있지만, 성분표를 보면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첨가물이 줄줄이 적혀 있는 그런 음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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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Nutrients》에 발표된 최신 연구에 따르면, 초가공식품은 장 건강에 여러 방면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먼저,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을 떨어뜨립니다. 건강한 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균형 있게 살고 있어야 하는데,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으면 이 균형이 무너집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나 '페칼리박테리움 프라우스니치'처럼 장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익균의 감소입니다. 이 균들은 장벽을 보호하고 염증을 억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초가공식품이 이들의 생존 환경을 악화시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벽 손상입니다. 초가공식품에 들어있는 유화제나 인공 감미료 같은 첨가물이 장 점막을 약하게 만들어 장 투과성을 높입니다. 쉽게 말해, 장벽에 작은 구멍들이 생기면서 원래는 통과하지 못해야 할 물질들이 혈액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장누수'의 시작점입니다.
 
 
장누수가 생기면 몸 전체에 만성 염증이 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염증은 대사증후군, 당뇨, 심혈관 질환은 물론이고 우울이나 인지 기능 저하 같은 뇌 건강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초가공식품을 완전히 끊어야 하는 걸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현대 사회에서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지나친 제한은 오히려 스트레스가 됩니다.
 
대신 이렇게 시작해 보세요. 장을 볼 때 성분표를 한번 읽어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성분 목록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첨가물이 다섯 가지 이상 나열되어 있다면, 잠시 멈추고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살펴보세요.
 
완전한 배제가 아니라 '빈도 줄이기'로 시작하는 것,. 일주일에 다섯 번 먹던 것을 세 번으로, 세 번을 한 번으로. 작은 변화가 모여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4. 지중해의 지혜를 우리 밥상에

 
'지중해식 식단'이라는 말을 들으면 올리브오일에 버무린 샐러드나 허브를 뿌린 생선 요리가 떠오르실 겁니다. 왠지 우리 입맛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국에서 지중해식 식단을 따라 하라니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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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중해식 식단의 '원칙'을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채소 중심의 식사, 좋은 기름의 사용, 생선과 해산물 섭취, 견과류, 그리고 적당한 발효 음료(와인). 이 원칙들은 사실 한국의 전통 식단과 놀라울 정도로 맞닿아 있습니다.
 
2024년 하버드 가제트에 실린 인터뷰(하버드 씽킹)에서 영양정신의학 전문가 우마 나이두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중해식 식단을 따를 때, 우리는 장내 미생물에게 건강한 먹이를 제공하게 됩니다. 식물성 음식과 식이섬유가 풍부하기 때문이죠. 장내 미생물이 균형을 이루면 염증이 줄어들고, 이것이 우울이나 불안 같은 정신건강 문제를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2025년 《Nutrient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지중해식 식단을 따르는 사람들의 장에서 비피도박테리움이나 페칼리박테리움 프라우스니치 같은 유익균이 더 많이 발견되었고, 단쇄지방산 생성도 증가했다고 보고한 바 있죠.
 
여기서 핵심은 '올리브오일'이나 '지중해'라는 단어가 아닙니다. 채소를 충분히 먹고, 좋은 지방을 섭취하며, 가공을 덜 거친 음식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지중해식 식단의 본질입니다.
 
이걸 우리 식탁에 적용해 볼까요? 올리브오일 대신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쓸 수 있습니다. 허브 샐러드 대신 제철 나물 무침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지중해식 생선구이 대신 고등어구이삼치조림을 올릴 수 있습니다. 아몬드와 호두 같은 견과류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간식이고요.
 
폴리페놀이라는 성분도 주목할 만합니다. 항산화·항염증 작용을 하는 이 물질은 올리브오일에도 풍부하지만, 녹차, 들깻잎, 부추, 양파, 마늘 같은 한국 식재료에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폴리페놀은 장내 유익균의 성장을 돕고, 염증을 일으키는 유해균의 증식을 억제합니다.
 
이 재료들을 식탁 요리로 치환한다면 이렇습니다. "볶음보다 무침, 튀김보다 구이, 버터보다 들기름." 조리법을 조금만 바꿔도 지중해식 원칙을 우리 식탁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습니다.
 

나에게 맞는 음식은 따로 있다

 
지금까지 장 건강에 일반적으로 좋은 음식과 피해야 할 음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덧붙여야 하는데요. 같은 음식이라도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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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Microbiome》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같은 프리바이오틱스(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성분)를 섭취해도 사람마다 장내 미생물의 반응이 크게 달랐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쇄지방산 생성이 크게 늘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변화가 미미했죠.
 
연구진은 이 차이가 개인이 평소에 먹던 식습관, 그리고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장내 미생물 구성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완벽한 음식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요거트를 먹으면 속이 편안해지지만, 다른 분은 오히려 더부룩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발효식품이 일반적으로 좋다고 해도, 히스타민에 민감한 분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습니다.
 
또 특정 음식에 대한 지연성 알러지(음식을 먹은 직후가 아니라 몇 시간에서 며칠 후에 나타나는 면역 반응)가 있는 경우,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이맵의원에서도 "좋은 영양제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고 자주 안내해 드리는 편인데, 음식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내 몸에 맞는 음식 찾는 방법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음식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방법은 '관찰'입니다. 특정 음식을 먹은 후 속이 불편하거나, 피부 트러블이 생기거나, 피로감이 심해지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기록해 두세요. 음식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어떤 음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전문적인 검사를 받아보는 것입니다. 장내 미생물 검사를 통해 자신의 장 속에 어떤 균들이 살고 있는지, 균형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연성 푸드 알러지 검사를 통해서는 특정 음식에 대한 면역 반응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하면, 막연히 "이게 좋다더라"는 정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실제로 맞는 식이 방향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분이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건강 식단을 따라 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거나, 특정 음식에 대한 반응이 유독 심하다면, 한 번쯤 전문가와 상담해 보시는 것을 권해 드립니다.
 
영양 상담 중인 하이맵의원
영양 상담 중인 하이맵의원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3가지 원칙

 
긴 이야기를 마치며 오늘 내용을 3가지 원칙으로 정리해드립니다. 복잡하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 3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첫째, 더하세요.

 
식이섬유가 풍부한 음식을 식탁에 올려주세요. 현미밥, 잡곡밥, 콩, 채소, 과일. 그리고 발효식품을 매일 한 가지 이상 챙겨 드세요. 김치, 된장, 청국장, 요거트. 이미 우리 식탁에 있는 것들입니다.
 

둘째, 줄이세요.

 
초가공식품의 빈도를 줄여보세요. 성분표에 모르는 이름이 줄줄이 나열된 음식들, 공장에서 만들어진 편의식품들. 완전히 끊을 필요는 없지만, 조금씩 줄여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 채워가도록.
 

셋째, 관찰하세요.

 
내 몸의 반응에 귀 기울여 주세요.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편안했는지, 어떤 음식 후에 불편했는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음식은 없습니다. 나에게 맞는 음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완벽한 식단은 없습니다. 유행하는 건강식을 모두 따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건 ‘방향’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우리 장 속 미생물의 생태계를 바꾸고, 결국 우리 몸 전체의 건강을 바꿔갑니다.
건강은 진료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의 식탁에서, 일상의 작은 선택에서 건강이 만들어집니다. 오늘 점심, 반찬 하나를 더 챙겨 드시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장이 편안해지면 몸 전체가 편안해집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부터 실천으로 옮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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