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호르몬의 90%는 ‘장’에서 만들어집니다."
"우울하면 뇌가 아니라 ‘장’부터 보세요."
요즘 건강 콘텐츠들에서 이런 얘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장 속 미생물이 우리의 기분을, 나아가 우울증까지 좌우한다는 이야기. 솔깃하고, 어딘가 희망적이기까지 합니다. 약이 아니라 식습관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표면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 전에, 그 속을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통설에는 분명한 근거의 씨앗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퍼나르는 과정에서 소소한 오해가 낀 것도 사실이죠. 건강 정보 분야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의미 있는 연구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점점 단순하고 자극적인 한 문장으로 압축되는 현상입니다.
오늘은 ‘장 건강이 만사다’라는 근래 분위기를 객관적으로, 실제로 어디까지 밝혀냈고, 우리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우울증 원인이 장내 미생물?
왜 이 이야기가 퍼졌을까? 통설의 진짜 씨앗은,
실제로 "장과 우울증이 관련 있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당히 탄탄한 대규모 연구에서 출발했습니다.
2019년,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 미생물학(Nature Microbiology)》에 벨기에의 대규모 인구 연구가 실렸습니다. 1,000명이 넘는 참가자의 장내세균을 분석한 결과,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특정 세균(코프로코쿠스, 디알리스터)이 눈에 띄게 줄어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를 네덜란드의 독립된 집단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며 신중을 기했습니다.
2022년에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또 다른 대규모 연구가 발표됩니다. 로테르담과 암스테르담의 수천 명을 분석한 이 연구는 우울 증상과 연관된 13가지 세균 그룹을 찾아냈는데, 흥미롭게도 이 세균들은 글루타메이트, 부티레이트, 세로토닌, 가바(GABA)처럼 우리 신경계와 관계된 물질의 대사에 관여하는 균들이었습니다.
특히 2019년 연구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장내세균이 신경에 작용하는 물질을 만들거나 분해하는 '잠재력'을 목록으로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도파민 대사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정신적 삶의 질과 긍정적으로 이어졌고, 미생물이 가바(GABA)를 만드는 능력은 우울증과 관련될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렇게 '장내세균이 신경 관련 물질을 다룬다'는 그림이 그려지자, 이야기는 한층 더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즉,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장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장과 다르다"는 관찰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여기에 더해, 장과 뇌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통설은 빠르게 확산될 토양을 얻었습니다.
🔗 관련 글 : 인체의 복잡한 네트워크 '장-뇌 축’
여기까지만 보면 "장이 우울증을 만든다"는 결론에는 별다른 이견이 생길 리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오해가 시작됩니다.

세로토닌의 두 얼굴
오해의 시작점
통설의 핵심 근거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세로토닌의 90%는 장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니 장이 곧 기분을 지배한다."
두 문장을 나눠 이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 문장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우리 몸 세로토닌의 90% 이상은 뇌가 아니라 장에서, 장 점막의 장크롬친화세포(enterochromaffin cell)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뒤 문장은 앞 문장과 반드시 연결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결정적인 사실 하나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장에서 만들어진 세로토닌은 직접 뇌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뇌에는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이라는 정교한 관문이 있습니다. 아무 물질이나 뇌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걸러내는 보호벽입니다. 그리고 세로토닌은 이 장벽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이는 여러 연구에서도 일관되게 얘기하는 지점인데요. 말초(장과 혈액)의 세로토닌과 중추(뇌)의 세로토닌은 서로 넘나들지 못하는, 사실상 분리된 두 개의 저수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장에서 만들어진 그 많은 세로토닌은 무슨 일을 할까요? 뇌의 기분을 조절하는 대신, 장의 운동과 소화를 돕고 혈액 응고와 같은 몸의 다른 일들을 담당합니다. 반면 우리의 기분을 좌우하는 뇌 세로토닌은, 뇌가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재료 삼아 뇌 안에서 따로 만들어 씁니다.
이 구분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널리 쓰이는 항우울제(SSRI 계열)가 겨냥하는 것도 바로 뇌 안의 세로토닌 시스템이지, 장에서 만들어지는 세로토닌이 아닙니다. 두 세계가 실제로 따로 다뤄진다는 방증인 셈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장에서 세로토닌이 많이 만들어지니 장이 곧 마음을 지배한다"는 등식은, 두 개의 분리된 저수지를 하나의 수도관으로 착각한 데서 생긴 비약입니다. 통설이 놓친 것은 바로 이 벽의 존재였습니다.

그럼 장은 뇌와 정말 무관할까?
진짜 연결 통로 4가지
여기서 성급한 결론을 내리 순 없습니다. 이면의 반대 이야기도 살펴봐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래서 장은 기분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도 진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장과 뇌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만 통설이 상상한 방식, 즉 장이 세로토닌을 만들어 뇌로 직접 보낸다는 방식이 아니라, 훨씬 더 정교하고 ‘우회적인 경로’들을 통해서입니다. 대표적으로 4갈래를 꼽을 수 있죠.
1. 미주신경
첫째는 미주신경입니다. 장과 뇌를 직접 잇는 굵은 신경 케이블로, 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뇌로 실시간 보고합니다.
🔗 관련 글 : 미주신경이란? (迷走神經, Vagus nerve)
2. 면역과 염증
장 점막이 약해지면 세균의 성분(내독소 등)이 혈류로 새어 들어가고, 이때 생긴 염증 물질이 뇌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라앉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는 염증 신호가 뇌에 닿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만성적인 낮은 수준의 염증이 기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단서이기도 하죠. 실제로 우울증과 만성 염증의 관련성은 오랫동안 주목받아 온 주제입니다.
3. 트립토판 대사
뇌 세로토닌의 재료인 트립토판은 장내미생물의 영향을 받아 세로토닌 쪽으로 갈 수도, 키뉴레닌이라는 다른 경로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 갈림길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기분과 이어집니다. 흥미롭게도 트립토판은 세로토닌과 달리 혈뇌장벽을 통과할 수 있어, 뇌 안에서 세로토닌으로 다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4. 단쇄지방산
마지막으로, 단쇄지방산(부티레이트 등)과 미생물이 만드는 신경 관련 물질입니다. 장내세균이 만들어내는 이런 대사물질들이 신경계와 상호작용한다는 연구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 관련 글 : 단쇄지방산(부티르산)이란? 미생물이 만드는 '천연 약’ 이야기
즉, 장이 뇌와 이어지는 이유는 장이 '세로토닌 공장'이어서가 아니라, 장이 염증과 대사와 신경 신호가 오가는 몸의 중요한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통설의 결론(장과 기분은 연결된다)은 옳았지만, 그 이유는 통설이 말한 것과 사뭇 달랐던 셈입니다.

우울증과 장내미생물 불균형, 둘은 ‘양방향’ 관계
우리가 정말 경계할 것은, ‘악순환’의 고리
우울증과 장내미생물 불균형 이슈는 애초에 어느 한쪽이 먼저인 일방통행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장과 뇌는 끊임없이 서로에게 신호를 주고받는 양방향 소통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정작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무엇이 먼저냐'가 아니라, 이 대화가 나쁜 쪽으로 맞물릴 때 생기는 ‘악순환’입니다.
실제로 앞서 소개한 대규모 연구들은 '연관성(상관관계)'을 보여줄 뿐, '무엇이 무엇을 일으켰는지(인과관계)'까지는 밝히지 못합니다. 2019년 벨기에 연구진 스스로도 논문에서, 자신들의 방법으로는 인과관계나 방향성을 검증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오히려 이 신중함이 좋은 과학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는 취지에서 각 방향의 논지를 간단히 정리해 드립니다.
장내미생물 불균형 → 우울증?
단서는 동물 실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16년 《분자정신의학(Molecular Psychiatry)》에 실린 연구에서, 연구진은 우울증 환자의 장내미생물을 무균 상태로 키운 쥐에게 이식했습니다. 그러자 그 쥐들이 우울증과 유사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미생물이 '뇌 쪽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단서입니다. (다만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동물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며, 훨씬 복잡한 사람의 우울증에 그대로 옮겨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울증 → 장내미생물 불균형?
반대 방향도 얼마든지 열려 있습니다. 우울증에 빠지면 식사가 불규칙해지고, 활동과 수면이 무너지며, 스트레스 호르몬의 리듬이 달라집니다. 스트레스가 장내미생물의 구성을 바꾼다는 것은 여러 연구와 임상으로 밝혀 온 방향으로, 스트레스 호르몬과 자율신경의 변화가 장의 환경을 흔들어 유익균을 줄이곤 합니다. 이렇게 우울증에 따른 몸의 변화가 거꾸로 장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즉 '미생물에서 뇌로' 향하는 길과 '뇌에서 미생물로' 향하는 길이 동시에 존재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악순환을 개선하는 생활 속 실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단번에 끊어내는 마법 같은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지점에서 조금씩 느슨하게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근거의 무게 순서대로 정리해 드립니다.

무엇보다 ‘식단’이 중요
가장 탄탄한 근거를 가진 마디는 '식단'입니다. 2017년 《BMC 의학(BMC Medicine)》에 실린 'SMILES' 연구는,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을 가진 성인에게 지중해식에 가까운 식단, 즉 채소와 통곡물·콩류·생선·올리브유를 넉넉히 하고 초가공식품을 줄인 식사를 안내했더니 우울 증상이 의미 있게 개선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런 식단은 장내세균에게 좋은 먹이가 되는 동시에 몸의 염증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해, 앞서 말한 악순환의 두 마디(장과 염증)를 함께 건드립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평소 이런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그럼 프로바이오틱스 챙기는 것도 도움이 되겠네요?’
이 부분에서는 조금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여러 메타분석을 종합하면, 프로바이오틱스가 우울 증상을 줄이는 효과는 있더라도 대체로 '작고', 연구마다 결과의 편차가 큽니다. 비교적 최근의 대규모 분석에서는 뚜렷한 효과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장내 생태계는 지문처럼 사람마다 달라, 같은 균주라도 누구의 장에서는 자리를 잡고 누구의 장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좋은 유익균'을 일률적으로 권하기보다, 내 장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살피는 개별화된 시선이 필요합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우울증의 치료제가 아니라, 잘 보아야 '보조적 가능성'을 지닌 후보입니다.
스스로 생활, 마음 돌보기
식단 밖의 다른 결들도 함께 챙겨야 합니다. 악순환은 장에서만 도는 것이 아니라 수면, 스트레스, 활동이라는 원인들과 맞물려 돌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식이섬유와 다양한 발효식품으로 장을 돌보고, 규칙적인 수면으로 몸의 리듬을 지키며, 가벼운 운동으로 기분과 대사를 함께 끌어올리는 일은 그 자체로 몸 전체에 이롭습니다. 어느 하나가 특효약이어서가 아니라, 여러 환경을 다각할 때 고리 전체가 천천히 헐거워지기 때문입니다.
🔖 ’이것’ 알아두세요.
이런 생활 습관은 악순환을 늦추는 '토대'이지, 우울증 자체를 대신 치료하는 처방이 아닙니다. 특히 우울감이 2주 이상 이어지거나 일상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라면, 생활 관리에만 기대기보다 전문의의 진단과 도움을 함께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고리를 늦추는 노력과 제대로 된 치료는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갈 때 가장 큰 힘을 냅니다.

몸을 ‘하나의 지도’로 읽어내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우울증 원인으로서의 ‘장 건강’을 펼쳐 설명드렸습니다.
사실 우울증은 장 하나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염증과 자율신경, 그리고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맥락까지, 이 모든 것이 얽힌 하나의 연결망입니다. 장은 그 연결망에서 분명히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지만, 유일한 답은 아닙니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트렌디함의 매력은 단순함에 있다고 봅니다. "장만 고치면 마음이 밝아진다"는 말은 듣기에 명쾌합니다. 하지만 몸의 진실은 언제나 그보다 입체적이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만약 내 증상, 특히 오래된 우울증, 어떤 노력에도 잘 개선되지 않는 우울증으로 어려운 시간을 겪고 있다면 이 입체성, 겉으로 드러난 증상 아래 숨은 연결고리를 함께 읽어내는 방안을 권장드립니다. 하이맵은 우울감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뇌만이 아니라 장과 염증, 호르몬과 자율신경의 흐름을 함께 살피고 있습니다.
본 콘텐츠는 건강 정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한 것으로, 특정 질환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우울감이나 관련 증상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하이맵의원 1:1 문의하기) 치료 반응과 경과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Sha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