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맵의원 진료실에서 자주 마주하는 만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환자분께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들어 오시는 장면.
실제로 얼마 전에는 5년치 종합검진 결과지를 연도별로 가지런히 정리해 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모든 결과지의 결론란에는 똑같은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특이 소견 없음."
그리고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맨날 가면 소견이 없다고 나오는데.. 근데 전 계속 아프거든요?"
이 질문 앞에서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닙니다. 올바른 설명입니다. '검사상 정상'이라는 다섯 글자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고, 또 무엇을 뜻하지 않는지. 오늘 그 대답의 안쪽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상'은 '건강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엄밀히 따지면 '들여다 본 항목들에서, 환자분이 정상 범우에 있고,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둘의 간격 안에, 많은 분들이 몇 년씩 갇혀 계십니다.

나 같은 사람이 40% 이상?
혹시 스스로를 유별난 사람이라 여기고 계셨다면, 그 생각부터 내려놓으셔도 좋겠습니다.
24개국에서 수행된 32개 연구, 총 7만 85명의 1차 진료 환자를 모아 분석한 메타분석이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의학적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신체 증상을 하나 이상 호소하는 환자의 비율은 검사 시점 기준 약 40%, 1년 기준 약 49% 였죠.
다만 저희는 이 숫자를 일반화시키지 않습니다. 연구자들 스스로 밝혔듯 포함된 연구들 사이의 이질성이 매우 커서, 이 추정치의 신뢰구간은 상당히 넓습니다. 그러니 "절반이 그렇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우리에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줍니다. 설명되지 않는 증상을 안고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의학이 오랫동안 과소평가해 온 규모, 그 이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ㄱ 역시 예외적인 환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온 다수 쪽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유 1. 일반 검진 '정상' 범위 바로 알기
그렇다면 검사지에 찍힌 '정상 범위'란 대체 무엇일까요?
국제 표준(CLSI/IFCC)에 따르면, 참조범위(reference interval)는 건강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의 검사값 중 가운데 95%를 잘라낸 구간입니다. 위아래 2.5%씩을 덜어내고 남은 중앙의 덩어리, 그것이 우리가 '정상'이라 부르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지점, 이 정의를 곱씹어 봐야 합니다. 참조범위는 '가장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가장 흔한 상태'를 기준으로 그어진 선입니다.
학교 시험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반 평균이 70점이라고 해서, 70점이 그 학생이 낼 수 있는 최선은 아닙니다. 평균 근처에 있다는 것은 '다수와 비슷하다'는 뜻이지, '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의학의 참조범위도 정확히 그렇게 작동합니다.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은 최적(optimal)이라는 보증이 아니라, 흔함(common)에 대한 진술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현대인의 '흔한 상태'가 곧 '좋은 상태'라고 믿을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유 2. 95%의 비밀 (다른 사람들의 분포)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갑니다. 어쩌면 이게 오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임상화학 분야에는 ‘검사 수치의 변동은 두 종류로 나뉜다’는 오래된 개념이 있습니다. 한 사람 안에서 시간에 따라 오르내리는 개인 내 변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개인 간 변이입니다.
1970년대부터 축적된 연구들은, 상당수 검사 항목에서 ‘개인 내 변이’가 개인 간 변이보다 작다는 점을 보여 왔습니다. 쉽게 말해, 우리 각자는 자기만의 좁은 '기준점(set-point)'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그 기준점은 사람마다 서로 꽤 다르다는 뜻이죠.
이건 결코 사소한 의미일 수 없습니다.
어떤 항목의 참조범위가 70에서 110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평생 자기 값이 60 언저리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그 값이 95까지 올라왔습니다. 본인에게는 대단히 이례적인 변화입니다. 그러나 검사지 위에서는 여전히, 조용한 '정상'입니다. 붉은 화살표 하나 뜨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련 연구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읍니다. 개인은 자신에게는 매우 비정상적인 값을 가지면서도, 인구 기준의 참조범위 안에 머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 개념을 실제 임상에 얼마나,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학계 안에서도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굳이 그 논쟁을 넘어 단정할 필요는 없겠죠.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얘기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남들의 정상'과 '나의 정상'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 검사지는 전자만을 알고 있고, 우리의 몸은 후자를 살고 있습니다.

이유 3. 검사는 '결과'를 볼 뿐, '대가'를 보지 않는다
또 하나의 오해를 짚어 드립니다. 수치가 정상이면 그 체계가 '편안'할 것이란 착각입니다.
신경과학자 브루스 맥이웬(Bruce McEwen)은 1998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실은 논문에서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는 개념을 정리했습니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에 맞서 안정을 지켜내지만, 그 안정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 코르티솔*을 비롯한 스트레스 매개물질들은 단기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대신, 장기적으로는 비용을 청구합니다. 이 누적된 비용을 그는 알로스타틱 부하(allostatic load)라고 불렀습니다.
이 관점을 검사지 위에 겹쳐 보면, 해석이 달라집니다.
혈당이, 혈압이, 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를 지키고 있다는 것. 이건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몸이 무언가를 갈아 넣어 그 정상을 붙들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댐의 수위가 안정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댐이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 아닙니다. 상류에서 밀려드는 물을 벽이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죠. 그떄 수위계는 그 벽의 균열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누적의 결과로 생긴 청구서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대개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피로입니다. 그리고 잠, 소화, 집중력, 기분이 차례로 그 대가를 나눠 냅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검사 결과상 ‘이상 없음’이라도 방심해선 안된다는 걸 쉽게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유 4. 한 장의 사진과, 하루라는 영화
자, 이제 건강검진과 우리 건강을 비유를 들어 설명드립니다. 건강검진은 대개 이렇게 진행됩니다. 8시간 이상 금식하고, 아침에, 한 번 채혈하죠. 개인적으로는 이걸 한 컷의 사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 몸의 많은 기능은 사진이 아니라 그 사진들이 연결된 영화로 존재합니다.
코르티솔은 아침에 솟구쳐 하루 종일 서서히 내려가는 곡선을 그립니다. 체온도, 소화액도, 뇌의 각성도도 각자의 리듬 위에서 움직입니다. 문제는 이 리듬이 어긋났을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야 비로소 정신이 맑아지고, 정작 누우면 잠들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의 몸에서 무너진 것은 '수치'가 아니라 '시간표'입니다. 그런데 아침 8시에 찍은 한 장의 사진에, 밤 10시의 현상은 담기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점 하나로는 그릴 수 없는 것이 있는 얘기인데요. 선은 두 점 이상이 있어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하루의 리듬을 보려면, 하루를 봐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유 5. 보지 않은 것은 '정상'.. = 그냥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꼭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진 결과지에 ‘이상이 없다’는 말은, 그 검사가 들여다본 범위 안에서 이상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들여다보지 않은 영역은 '정상'으로 판정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 애초에 판정 대상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일반 검진의 시야 밖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장 내강에서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대사산물, 세포 안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효율, 영양소가 실제로 흡수되고 있는지 여부, 간이 독성 물질을 처리하는 흐름 등. 이 영역들은 대체로 표준 검진 항목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런 기능의 흐름을 보기 위해서는 소변 유기산 검사, 장내 미생물 검사, 타액 호르몬 검사, 수소호기검사(SIBO검사)처럼 목적이 다른 검사가 필요합니다.
'음성(negative)'과 '미조사(not examined)'는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이 두 개념을 구분하지 못하면 소중한 삶의 시간을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지속시킬 수 있죠.
이유 6. 마지막으로 아무도 전체를 보지 않는다
마지막 이유는 검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소화기내과는 장을 봅니다. 정상입니다. 신경과는 신경을 봅니다. 정상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는 기분을 봅니다. 스트레스라고 말합니다. 각 진료과는 자기 영역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장과 뇌와 호르몬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는 누구의 담당도 아닙니다. 사실상 회색지대. 실제 많은 환자분들이 각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지 않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서 길을 잃고 있습니다.
하이맵의원이 장-뇌-호르몬 축*을 하나의 연결된 흐름으로 보고, 7Core-3Balance*라는 틀로 신체 일곱 개 축과 뇌 기능 세 개 축을 함께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가정의학과·정신건강의학과·내분비내과 전문의가 한 사람을 함께 들여다보는 협진 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연결을 보려면, 연결을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5년을 기록해 온 어느 분의 이야기
최근 초진으로 만난 한 분의 기록을 옮겨 봅니다. 이분은 5년간 매년 종합검진을 받았고, 결과는 언제나 '치료할 곳 없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기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기록에는 이런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 음식을 먹으면 극심한 식곤증과 머리의 흐림이 온다. 오히려 굶고 있을 때 정신이 가장 맑다.
- 대변을 보고 나면, 머리를 누르던 무기력이 확실히 걷힌다.
- 밤 10시가 지나면 정신이 가장 또렷해지고, 그 때문에 잠들지 못한다.
- 손은 크게 못 느끼는데, 발끝만 저리고 아프다.
앞에서 살펴 본 이유들이 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겹치는지 보이시나요?
먹은 뒤에 나빠지고 굶으면 나아지는 흐름.. 배변 이후의 변화, 이건 위에서 말한 '들여다보지 않은 영역'의 이야기입니다. 밤 10시의 각성은 4번에서 얘기드린 '한편의 영화' 전체를 들여다 보지 않았기 떄문에, 또 발끝의 저림은 3번에서 짚은 '누적된 결과, 청구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5년간의 '이상 없음'은 1번과 2번에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정상 소견'은 답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
'이상 없음'은 내 몸이 완벽히 정상이라는, 문제가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 닙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날 들여다본 곳에는 없었다 라는 해석이 더욱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검사지 앞에서 이렇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이 검사는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보지 않았는가. 이 '정상'은 누구의 정상인가. 나의 예전 값과 비교하면 어떤가. 이것은 한 컷인가, 하루인가.
하이맵의원은 22년의 임상과 8만 건 이상의 기능의학 검진 데이터, 6만 건 이상의 정량뇌파 기반 시술 경험을 쌓아 왔습니다. 그 시간과 경험으로 자신 있게 이야기해 드릴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는 정상인데, 몸이 계속 불편한 것의 원인은 대개, 아직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자리에 있었다는 것. 사실상 그게 전부입니다.
만약 여러분께서도 같은 어려움의 굴레 속에 있다면, 언제든 하이맵의원을 내원하시길 바랍니다. 하이맵의원은 난치성 질환*과 더불어, 복합적인 증상으로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과거와 다른 밝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건강검진에서 정상이 나왔는데도 기능의학 검사가 필요한가요?
A. 두 검사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목적이 다릅니다. 건강검진은 이미 발생한 질병을 찾아내는 데 강점이 있고, 기능의학 검사는 아직 질병 기준을 넘지 않은 단계의 기능 저하와 불균형을 살핍니다. 검진에서 이상이 없는데도 피로·불면·소화 문제가 지속된다면, 목적이 다른 검사가 실마리를 줄 수 있습니다.
Q. '정상 범위'는 어떻게 정해지나요?
A. 국제 표준에 따르면 참조범위는 건강하다고 판단된 사람들의 검사값 중 가운데 95%를 잘라낸 구간입니다. 즉 '가장 좋은 상태'가 아니라 '가장 흔한 상태'를 기준으로 그어진 선이며, 정상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 최적의 상태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Q. 수치가 정상인데도 몸이 힘들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첫째, 사람마다 자기만의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에 본인에게는 큰 변화가 생겨도 인구 기준의 정상 범위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둘째, 정상 수치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몸이 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중이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셋째, 하루의 리듬 이상은 한 번의 채혈로 포착되지 않습니다.
Q. 어떤 검사부터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A. 증상마다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만성피로와 브레인포그가 중심이라면 소변 유기산·모발 미네랄 검사를, 불면과 불안이 중심이라면 자율신경 검사·정량뇌파·타액 코르티솔 검사를 우선 고려하는 식입니다. 첫 진료의 문진에서 증상과 기능의 연결을 먼저 확인한 뒤, 필요한 검사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 순서상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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