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픈 건 아닌데, 늘 어딘가 불편합니다."
진료실에서 이런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소화가 찝찝하고, 피부 트러블이 반복되고, 머리는 안개가 낀 듯 흐릿한데. 막상 검사를 받아보면 이상이 없다는 결과만 반복됩니다. 분명 몸은 힘든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이 엄습하죠.
혹시 이런 경험이 있으시다면, '장누수증후군(Leaky Gut Syndrome)'이라는 개념을 한번 살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장누수증후군, 정확히 무엇인가요?
우리 장(腸)의 내벽은 약 370제곱미터에 달하는, 몸에서 가장 넓은 경계면입니다. 이 넓은 면적이 하는 일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들여보낼 것은 들여보내고, 막을 것은 막는 것.' 물과 영양소는 흡수하되, 세균이나 독소는 차단하는 촘촘한 그물망 역할이죠.

이 그물망의 핵심이 바로 밀착연접(tight junction)이라 불리는 세포 간 연결 구조입니다. 세포와 세포 사이를 단단히 잠그는 일종의 '지퍼'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지퍼가 느슨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미처 소화되지 않은 단백질 조각, 세균의 대사산물, 내독소(LPS) 같은 물질들이 장벽을 뚫고 혈류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이 상태를 의학에서는 장투과성 증가(increased intestinal permeability)라고 부르고, 좀 더 쉽게는 '장누수'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장은 어느 정도 투과성을 가지고 있고, 그 자체가 정상이라는사실. 장벽이 완전히 막히면 아무런 영양소도 흡수할 수 없으니까요. 문제가 되는 것은 과도한 투과성(hyperpermeability), 즉 통과하면 안 되는 물질까지 무분별하게 새어 나가는 상태입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 있습니다. 바로 조눌린(zonulin)입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Fasano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조눌린은 밀착연접의 개폐를 조절하는 '열쇠'와 같은 물질로, 이 조눌린의 과도한 분비가 장벽을 느슨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장누수증후군의 증상 7가지
💊 아래 해당된다면 장누수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장누수의 까다로운 점은 증상이 '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벽이 무너지면 그 영향은 혈류를 타고 온몸으로 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증상이 장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합니다.
아래 7가지 증상은 장누수와 관련해 최근 연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호들입니다. 물론 이 증상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장누수증후군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면 한 번쯤 장 건강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만성 복부팽만, 가스, 소화 불편
"밥을 먹으면 배가 빵빵해지고, 가스가 차서 힘들어요."
가장 대표적인 신호입니다.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을 해봐도 특별한 소견이 없는데 복부팽만, 잦은 트림, 가스, 복통이 반복되는 경우. 2024년 장 투과성과 IBS를 다룬 리뷰 논문에 따르면, 과민성대장증후군(IBS)이나 기능성 소화불량 환자에서 장벽 기능의 이상이 관찰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장벽이 손상되면 장 안에서 국소적인 염증 반응이 일어나고, 장내 미생물의 균형도 함께 흔들립니다. 이것이 복부팽만과 소화 불편의 원인이 될 수 있지요. 실제 하이맵의원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환자분들도 오래된 소화 문제, 과민성대장증후군, 역류성식도염, 잦은 트림과 가스 등 복합적인 소화 증상을 함께 호소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2. 원인을 알 수 없는 음식 과민 반응
"예전에는 잘 먹던 음식인데, 요즘은 먹기만 하면 속이 불편해요."
일반적인 알레르기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오는데, 특정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거나 피부가 올라오거나 머리가 무거워지는 경험. 이런 반응은 즉각적인 알레르기(IgE 매개)가 아니라, 수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서서히 나타나는 지연성 과민 반응(IgG 매개)일 수 있습니다.
장벽이 느슨해지면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단백질 조각이 혈류로 유입됩니다. 우리 면역계는 이 낯선 단백질을 '침입자'로 인식하고 면역 반응을 일으킵니다. 같은 음식을 반복적으로 먹으면 이 반응이 누적되면서 점차 과민해지는 것이지요.
3. 반복되는 피부 트러블
"아토피가 자꾸 재발해요. 연고를 발라도 나았다 악화되기를 반복합니다."
피부와 장은 생각보다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 의학계에서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장-피부 축(gut-skin axis입니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장투과성을 높이고, 그 결과 혈류로 유입된 내독소(LPS)와 염증 매개물질이 전신을 순환하며 피부에 염증을 유발하는 경로입니다.
2025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아토피피부염 환자에서 장누수 관련 바이오마커(I-FABP, LBP, Reg3A 등)가 건강한 대조군보다 유의미하게 높았으며, 이 수치가 질환의 중증도와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2024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동물 모델 연구에서는 심리적 스트레스가 장벽을 손상시키고, 장에서 유래한 LPS가 피부까지 도달하여 아토피 가려움을 악화시키는 과정이 실험적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Dermatology Times에 실린 칼럼에서 Lio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피부 장벽(skin barrier)이 무너지면 외부 물질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듯, 장 장벽이 무너지면 장 속의 물질이 몸 안으로 새어 들어옵니다. 아토피, 건선, 만성 두드러기처럼 반복되는 피부 문제가 있다면 피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장 안쪽도 함께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인거죠.”
4. 만성피로와 에너지 저하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오후만 되면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검사상 빈혈도 없고 갑상선 수치도 정상인데, 늘 피곤하고 무기력한 상태. 이런 '설명되지 않는 피로'의 배경에 만성 저등급 염증(chronic low-grade inflammation)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장벽이 손상되면 장 속 세균의 내독소(LPS)가 혈류로 유입됩니다. 이 내독소는 면역세포를 자극하여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게 하는데, 이 만성적인 미세 염증이 세포 수준에서 에너지 생산을 방해합니다.
미국기능의학회(IFM)가 장 건강 회복을 다양한 만성 질환 치료의 출발점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장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5. 브레인포그(Brain Fog)와 집중력 저하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아요. 책을 읽어도 내용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브레인포그는 진단명은 아니지만, 이 표현만큼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말도 없습니다. 멍함,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사고의 둔화. 실제로 진료실에서 우울이나 불면과 함께 브레인포그를 호소하시는 환자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이 장-뇌 축(gut-brain axis)입니다. 장과 뇌는 미주신경, 면역 매개물질, 신경전달물질 등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습니다. 장벽이 무너져 내독소가 혈류에 유입되면, 이 물질은 뇌를 보호하는 또 하나의 장벽인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2023년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에 발표된 리뷰 논문에 따르면, 조눌린은 장벽뿐 아니라 혈뇌장벽의 투과성도 조절하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장이 새면, 뇌를 보호하는 장벽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죠. 실제로 불안, 우울, 양극성 장애,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다양한 중추신경계 질환 환자에서 혈중 조눌린 수치가 상승해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하이맵의원에서 "뇌만을 보지 않고, 장-뇌 축의 회복이 정신건강 회복의 핵심"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합니다.
6. 우울감, 불안, 감정 기복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하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졌어요."
우리 몸의 세로토닌(흔히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신경전달물질)의 약 90%는 뇌가 아닌 장에서 만들어집니다. 장 환경이 흔들리면 세로토닌의 원료인 트립토판(tryptophan)의 대사 경로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정상적이라면 트립토판은 세로토닌으로 전환되어야 하지만, 만성 염증 상태에서는 트립토판이 키누레닌(kynurenine) 경로로 빠지면서 세로토닌 생성은 줄고, 대신 신경독성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SSRI)가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 증상을 개선하더라도, 환자분 중 일부가 "약을 먹어도 완전히 나은 느낌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배경에 이런 기전이 관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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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Acta Psychiatrica Scandinavica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최근 자살 시도 이력이 있는 환자군에서 장투과성 바이오마커(I-FABP)가 유의하게 높았으며, 2025년 Diagnostics 메타분석에서도 우울 증상 환자와 건강한 대조군 사이에 조눌린, I-FABP, sCD14 등 장누수 관련 지표의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었습니다.
물론 우울과 불안의 원인이 장 하나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약물에 잘 반응하지 않는 우울증이나, 뚜렷한 이유 없이 반복되는 감정 기복이 있다면, 장-뇌 축의 관점에서 한번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7. 관절 통증, 근육통 같은 전신 염증 반응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데, 정형외과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장누수의 영향은 소화기와 신경계를 넘어 관절, 근육, 면역 시스템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장벽 손상으로 혈류에 유입된 내독소와 미생물 단편은 면역세포를 지속적으로 자극합니다. 이렇게 활성화된 면역세포가 혈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관절, 근육 등 원거리 조직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죠.
2024년 Clinical and Experimental Medicine에 실린 종합 리뷰는 장벽 손상이 류마티스 관절염, 강직성 척추염, 루푸스(전신홍반성루푸스) 등 전신 자가면역 질환의 발병 및 악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4년 전인 Fasano 교수의 2020년 리뷰 논문에서도 역시 조눌린 매개 장투과성 증가가 다양한 만성 염증성 질환의 공통 경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제시한 바 있죠.
특별한 외상이나 구조적 문제 없이 여기저기 아프고 뻣뻣한 증상이 반복된다면, 관절이나 근육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전신 염증'이라는 더 넓은 그림 안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장벽은 왜 무너지는 걸까?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분들을 위한 답변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요한 장벽이 느슨해지는 걸까? 원인은 다양합니다. 대부분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에 걸쳐 복합적으로 작용하죠.
무엇보다 만성 스트레스는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이 과활성화되고, 코르티솔의 만성적 분비가 장 점막의 방어 기능을 약화시킵니다.
가공식품과 유화제, 첨가물 중심의 식단도 장벽에 부담을 줍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기능의학회(IFM)는 초가공식품의 만성적 섭취가 장내 염증과 투과성 증가를 촉진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장기간의 약물 사용, 특히 NSAIDs(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의 반복적 복용은 장 점막의 미세 손상을 누적시킵니다. 항생제의 반복 사용으로 인한 장내 미생물 불균형(디스바이오시스)도 장벽 기능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입니다.
이 밖에도 과도한 음주, 수면 부족, 환경 독소 노출, 그리고 유전적 감수성에 따른 특정 식이 요인(글루텐 등)이 개인차에 따라 장 투과성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요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매일의 식사, 수면, 스트레스, 약물 사용이라는 일상적 요인들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장벽의 그물코를 하나씩 느슨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누수증후군이 맞다면?
장누수증후군이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는, 현재 의학에서 이를 확정적으로 진단하는 표준화된 검사법이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2024년 Gastroenterology & Hepatology에 실린 리뷰에서도 "장누수증후군은 정식 의학 진단명이 아니며, 증상이나 혈액검사, 대변검사만으로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 기능의 이상을 전혀 파악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기능의학에서는 장벽 하나만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장 기능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습니다.
하이맵의원에서는 22년간 7만 건 이상의 기능의학 검진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검사들을 통해 장 건강의 전체 그림을 파악합니다.
소변 유기산 검사는 장내 유해균의 과증식 여부, 에너지 대사의 흐름, 간의 해독 기능을 확인합니다. 장내미생물 검사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분포를 직접 분석하여 제균 치료의 필요성과 맞춤 프로바이오틱스 선택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지연성 푸드 알러지 검사는 특정 음식에 대한 지연성 면역 반응을 확인하여, 장벽에 반복적으로 부담을 주는 식이 요인을 찾아냅니다. 혈액검사를 통해서는 염증 지표, 호르몬 밸런스, 영양 결핍 상태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합니다.

이 검사들은 단순히 수치의 정상과 이상을 나누는 것이 아닙니다.
에너지를 얼마나 잘 만들고 있는지,
소화와 흡수는 원활한지,
해독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면역 시스템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지.
이렇게 기능의 흐름 전체를 읽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하이맵의원의 접근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장 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장-뇌-호르몬 축 전체를 함께 봅니다. 장의 염증이 뇌 기능에 영향을 주고, 스트레스 호르몬의 불균형이 다시 장벽을 손상시키는 악순환.
이 연결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식이 교정, 영양 처방, 장내 환경 회복, 스트레스 관리, 필요시 TMS 치료까지 약물에 의존하지 않는 통합적인 회복 루틴이 필요합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세요.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장누수증후군의 증상은 다양합니다. 소화 불편에서 시작해 피부, 피로, 뇌, 감정, 관절까지. 그 다양함이 때로는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우리 몸이 그만큼 다양한 경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이 증상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증상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 이른바 ‘근본 원인’을 찾아 바로잡는 것입니다. 기능의학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죠.
물론 장누수와 관련된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며, 개인마다 원인과 증상의 양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위에 해당되는 증상이 있다고 해서 섣불리 자가 진단을 하기보다는, 기능의학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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