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가 석 달째 없어요.
산부인과에서는 피임약을 처방해주셨는데,
약을 끊으면 또 멈춰요."
진료실에서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생리가 불규칙하다는 건, 단순히 달력 위의 숫자가 어긋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이 계속 찌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빠지지 않는 답답함, 거울을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턱선의 잔털과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여드름,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삼키는 자책.
"나만 이런 걸까?" 하는 외로움까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을 처음 듣는 분도 계시고, 이미 진단을 받았지만 피임약과 메트포르민 처방 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해 지쳐 있는 분도 계십니다. 어느 쪽이든, 이 글이 "왜 내 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작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정확히 무엇인가요?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 Polycystic Ovary Syndrome)은 가임기 여성에게 가장 흔한 내분비 질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임기 여성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경험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결코 드문 질환이 아닙니다.
'다낭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난소에 혹이 잔뜩 생긴 것처럼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난포, 그러니까 난자를 품고 있는 작은 주머니들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채 난소 안에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나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과 비슷합니다.
2023년에 발표된 국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진단은 3가지 축 가운데 2가지 이상이 해당될 때 내려집니다. 남성호르몬(안드로겐)이 높거나 그로 인한 증상이 있는 경우, 배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그리고 초음파나 혈액검사에서 다낭성 난소 소견이 확인되는 경우입니다.
- 남성호르몬이 높거나, 그로 인한 증상
- 베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 초음파, 혈액검사에서 다낭성 난소 소견 확인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국제 의학계에서는 이미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이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합니다. 이 질환이 난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사·심혈관·정신건강까지 아우르는 전신적 질환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에 갇혀 난소만 바라보면, 정작 몸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놓치게 됩니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의심해 보세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분은 생리불순만, 어떤 분은 체중 문제만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다음과 같은 변화들이 하나둘 겹쳐온다면, 이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check 1. 생리 주기 변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생리 주기의 변화입니다. 두세 달에 한 번 오거나, 아예 멈추거나,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오는 출혈. 바로, 배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몸의 신호입니다.
check 2. 피부 변화
피부에도 변화가 옵니다. 유독 턱과 입 주변에 집중되는 여드름, 팔이나 턱선에 눈에 띄는 잔털, 반대로 정수리 부근이 점점 얇아지는 느낌. 이 모든 것이 체내 안드로겐이 높아졌을 때 나타나는 외적인 신호입니다.
check 3. 체중 변화
체중의 변화도 흔합니다. 특히 복부를 중심으로 살이 붙고, 다이어트를 해도 잘 빠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먹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대사적 신호입니다.
check 4. 그리고 이런 ‘느낌’(?)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증상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피로감, 머리에 안개가 낀 것 같은 브레인포그, 감정의 기복. "요즘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하는 느낌이 단순한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과 대사, 그리고 뇌의 연결 고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이 있다면, 먼저 스스로를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여러분의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래 이어서 설명드립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산부인과에서 "호르몬 불균형"이라는 설명을 들으셨을 겁니다. 영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봐야 합니다. 호르몬이 왜 불균형해졌는가. 그 질문에 답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됩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숨은 원인 3가지
- 인슐린 저항성
- 장내 미생물 불균형
- 스트레스와 부신
첫 번째 뿌리, 인슐린 저항성
인슐린은 원래 세포의 문을 열어 에너지를 전달하는 열쇠 같은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세포가 이 열쇠에 잘 반응하지 않으면, 우리 몸은 더 많은 열쇠를 만들어냅니다. 혈중 인슐린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상태, 이것이 바로 인슐린 저항성입니다.
문제는 이 과잉된 인슐린이 난소에 도달하면, 남성호르몬의 생산을 부추긴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간에서는 성호르몬결합글로불린이라는 운반 단백질의 생산이 줄어들어, 혈중에 떠다니는 유리 테스토스테론이 증가합니다. 여드름, 다모증, 탈모, 배란 장애.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증상이 이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옵니다.
주목할 점은, 인슐린 저항성이 비만한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체중이 정상이거나 오히려 마른 체형의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에게서도 관찰됩니다. 겉으로 보이는 체형만으로는 몸 안의 대사 상태를 판단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뿌리, 장내 미생물 불균형
최근 연구들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건강한 여성과 다르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익균의 비율이 줄어들고 특정 유해균이 증가하면, 장 점막의 방어벽이 약해집니다. 우리가 '장누수'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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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이 무너지면 그람 음성균의 내독소가 혈류로 스며들어 만성적인 저등급 염증을 유발합니다. 이 염증은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키고, 안드로겐 생산을 자극하며, 나아가 뇌의 신경전달물질 균형까지 흔들 수 있습니다.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고 불리는 이 연결 경로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 왜 단순한 산부인과 질환이 아닌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진료실에서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분들께 소화 상태, 가스, 배변 습관을 여쭤보면 그게 난소랑 무슨 상관이냐며 반문하시는 분이 많은데, 깊게 관련되어 있는 이슈입니다. 때로는 난소보다 장을 먼저 살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 번째 뿌리, 스트레스와 부신
만성적인 스트레스는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HPA) 축을 과도하게 활성화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코르티솔뿐 아니라 DHEA-S, 안드로스테네디온 같은 부신 유래 안드로겐도 함께 증가합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의 상당수에서 이 부신성 안드로겐 과잉이 관찰된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죠.
코르티솔 리듬이 교란되면 잠들기 어렵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며, 낮 동안 무기력함이 지속됩니다. 이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불안과 우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스트레스가 호르몬을 무너뜨리고, 무너진 호르몬이 다시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을 높이는 악순환입니다.
저희 병원에서 타액 코르티솔 검사를 통해 아침부터 밤까지의 스트레스 호르몬 리듬을 확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피곤한데 수면제만 먹는 것, 불안한데 항불안제만 복용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닐 수 있습니다.
3가지 뿌리가 만드는 악순환
- 인슐린 저항성이 장내 미생물 불균형을 악화시키고,
-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만성 염증을 키우고,
- 만성 염증이 부신에 과부하를 주고,
- 부신의 과부하가 안드로겐을 높이고,
- 높아진 안드로겐이 배란을 막고,
- 배란이 멈추면 대사가 더욱 나빠지고,
- 나빠진 대사가 다시 인슐린 저항성을 심화시킵니다.
이 고리의 어느 한 지점만 끊어서는, 다른 지점에서 다시 불이 붙습니다. 산부인과에서 피임약을, 내분비내과에서 메트포르민을, 피부과에서 여드름 치료를 따로따로 받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렇게 해도 근본적으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기존 치료의 한계
오해가 없도록 먼저 말씀드립니다. 경구피임약이나 메트포르민은 분명히 역할이 있는 치료입니다. 급성기 증상을 안정시키고 악순환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많은 환자분들이 경험하는 한계 역시 분명합니다.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생리가 규칙적으로 돌아오지만, 끊으면 다시 멈춥니다. "왜 내 몸이 이렇게 된 건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고, 체중 관리에 대해서는 "식이조절과 운동을 하세요"라는 일반적인 조언만 돌아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거울 앞에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여줄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2023년 국제 다낭성 난소 증후군 가이드라인에서도 환자들의 진단·치료 경험에 대한 불만족이 높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활습관 개입, 정서적 안녕, 삶의 질에 대한 통합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기존 치료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더 넓은 시야에서 내 몸을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 그럴 필요가 있다는 얘기죠.
다낭성 난소 증후군, 이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기능의학의 접근은 "이 증상을 어떻게 끌 것인가"가 아니라, "이 증상의 불씨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살펴보는가?
같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불균형의 시작점이 다릅니다. 그래서 치료에 앞서 정밀한 기능 평가가 필요합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치료를 위한 기능 평가 검사 리스트
- 혈액 검사
- 타액 호르몬 검사
- 소변 유기산 검사
- 장내 미생물 검사
- 지연성 푸드 알러지 검사
- 모발 미네랄(중금속) 검사 등
혈액검사를 통해 호르몬 수치, 인슐린 수준, 혈당, 염증 지표를 확인합니다. 타액 호르몬검사로는 코르티솔의 하루 리듬과 성호르몬, DHEA의 균형을 살펴봅니다. 소변 유기산검사는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 능력, 간의 해독 경로, 신경전달물질의 대사 상태를 보여줍니다. 장내 미생물검사와 지연성 푸드 알러지검사는 장 환경과 식이 요인에 의한 만성 염증 경로를 추적합니다. 모발 미네랄검사는 중금속 축적과 미네랄 균형을 확인합니다.
건강검진에서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으셨더라도, 세포 수준의 기능은 이미 흔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기능의학검사는 질병이 되기 전의 '기능적 불균형'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회복, 치료을 설계하는 방법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환자 한 분 한 분에게 맞는 치료 플랜을 설계합니다. 워낙 원인의 경로가 다양하기에, 모든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에게 같은 처방을 할 수 없죠.

예를 들어,
인슐린 저항성이 주된 원인인 경우에는 대사 회복에 집중합니다. 혈당을 안정시키는 식이 설계, 인슐린 감수성을 높이는 영양 처방,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돕는 영양소 보충이 핵심입니다.
장 환경의 문제가 두드러진 경우에는 장벽 회복을 위한 영양요법, 유해균 제거와 유익균 재배양, 항염 식단 설계가 선행됩니다.
부신 피로와 스트레스 과부하가 주된 경우에는 코르티솔 리듬의 정상화를 돕는 영양치료와 수면·생활습관 교정이 치료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리고 많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 환자분들이 동반하고 있는 우울감, 불안, 불면에 대해서도 비약물적 접근을 병행합니다. 정량뇌파(qEEG) 분석을 통해 뇌의 기능적 상태를 확인하고, rTMS(경두개자기자극술)를 통해 뇌 기능의 균형 회복을 돕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협진하면서,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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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맵의원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명으로 오시든, 아토피로 오시든,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오시든, 여러 증상의 뿌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를 찾아 치료하면, 과잉 약물 없이도 전반적인 회복이 가능해집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 ‘마음의 문제’이기도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겪는 여성들이 우울과 불안을 동반하는 비율은 일반 여성에 비해 높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외모가 변해서 속상한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호르몬 불균형, 만성 저등급 염증, 장-뇌 축의 교란, 코르티솔 리듬의 파괴. 이 모든 생물학적 요인이 뇌의 신경전달물질 균형을 흔들고, 감정 조절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몸이 먼저 아프고, 그 아픔이 마음으로 올라오는 거죠.
실제로 2023년 국제 다낭성 난소 증후군 가이드라인에서는 모든 환자에 대해 우울과 불안을 정기적으로 스크리닝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질환에서 정서적 회복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치료의 핵심 축입니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치료에서 정서적 회복을 빠뜨린다면, 절반만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는 3가지
정확한 원인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진료실을 방문하시기 전이라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1. 식사 패턴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 않는 식사 패턴이 중요합니다. 정제 탄수화물과 당류를 줄이고, 단백질과 건강한 지방을 함께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인슐린의 과잉 분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장 건강을 위해서는 발효식품과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고, 가공식품을 줄이는 습관이 출발점이 됩니다.
2. 수면 리듬
수면 리듬의 회복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밤 11시 이전의 취침은 코르티솔 리듬 정상화의 첫걸음이며, 부신의 회복 시간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운동은 과도한 유산소보다는 근력 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인슐린 감수성 개선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3. 마인드셋
그리고 한 가지 더,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자기 비난’을 멈추는 것. "내가 자기관리를 못 해서", "내가 의지가 약해서"라는 생각은 사실이 아닙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유전적, 대사적,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입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몸은 이미 회복하고 싶어 합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난치가 아닙니다. 뿌리를 찾지 못했을 때 난치처럼 느껴지는 질환입니다.
각 과를 전전하며 약물만 늘어가는 현실이 지치셨다면, 여러 증상의 뿌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슐린과 장과 부신과 뇌. 이 연결 고리를 함께 살피고, 개인에게 맞는 회복의 순서를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기능의학이 제안하는 길이며, 저희가 22년간의 임상 경험을 통해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회복은 하루아침에 오지 않습니다. 개인마다 원인의 비중이 다르고, 몸이 반응하는 속도도 다릅니다. 하지만 방향이 맞다면, 몸은 반드시 응답합니다. 이 사실을 꼭 마음에 새겨두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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